벧엘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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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선교

니카라과 선교소개

  • 국가, Anthem

    니카라과 (NICARAGUA), 그대에게 만세를

  • 수도

    마나과(MANAGUA)

  • 공용어

    스페인어

  • 정부형태

    공화정, 대통령 : 다니엘 오르테가, 부통령 : 로자리오 무릴로

  • 독립일

    1850년 7월 25일 에스파냐로부터 독립

  • 면적

    130,373 km2, 50,193 sq mi

  • 인구

    6,071,045명 (2012년), 인구 밀도 51명/km2 (155위)

  • 인종 분포

    데스 조(스페인, 인디헤나 혼혈)69%, 백인 17%, 인디헤나 5%, 물라또(스페인, 흑인 혼혈)9%

  • GDP (2019년)

    전체 $125억 (137위), 일인당 $1,913 (146위)

  • 통화 (2021년)

    코르도바 (1 US dollar =34.96 cordobas)

원래 현재의 니카라과 땅에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1821년 니카라과는 멕시코에 가입된 상태에서 독립을 이루었고, 1823 년부터는 중앙아메리카 연방에 속해 있었다. 니카라과는 1838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에서 독립하였다. 그러나 카리브해 연안은 1860년까지 영국 보호령이었다. 영국이 니카라과호를 거쳐 2대 해양을 연결하는 운하건설 후보지로서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2012년에 다니엘 오르테가가 삼선에 성공함으로 1985년 부터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니카라과국기

외교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NL)의 사회주의혁명으로 1979년 독재정부 소모자(Somoza)가 실각하였는데, 이것은 쿠바의 공개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이는 쿠바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운동을 군사적으로 지원했음을 말해준다.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2008년의 안데스 외교 위기(Andean diplomatic crisis)에 뒤이어, 2008년 3월 6일, 에콰도르와 연대하여, 콜롬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말했다. [1] 최근에는 러시아에 이어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아의 독립을 인정했다.

지리

국토의 면적은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넓으나, 인구밀도는 가장 낮다. 니카라과의 지역은 카리브해쪽의 저지, 태평양쪽의 저지, 그리고 중앙산지 등으로 대별된다. 카리브해쪽 평야는 일년 내내 비가 많고 무더운 불건강지로서, 소지(沼地)와 열대우림이 뻗어 있고, 산림에는 마호가니가 산출된다. 카리브해쪽의 저지는 인구가 희박하고, 해안의 일부에 바나나 대농원이 점재(點在)한다.중앙산지는 주로 화산성 고원으로 이루어지며, 기후도 시원하여 목축과 금·은 등의 광산지대이다. 태평양 연안과 2대 호소(湖沼) 사이가 이 나라의 심장부로서 총인구의 약 80% 및 산업도 이 지역에 집중해 있다.수도 마나과(Managua, 86만 4,201명, 1995)도 이 지역의 마나과 호반에 자리하고 있다. 건계(乾季)와 우계(雨季)로 나뉘고 덥기는 하나 살 만하다. 태평양쪽 해안을 따라 화산이 분출하며 토양도 비옥하다.

기후

니카라과는 대체적으로 우기(5-11월)와 건기(12-4월)가 교차하는 열대 사바나 기후지역이다. 전국 평균기온은 24℃[75.2℉], 습도는 85%이다. 저지대에서는 열대기후(연평균 25.5℃[77.9℉])가 나타나는 반면, 고지대는 연평균 15.5~26.5℃[59.9~79.7℉]로 서늘한 편이다. 북동풍이 탁월하여 열대다우지를 이루고, 특히 해안 부근은 저습(低濕)한 밀림지대(密林地帶)로 모스키토(모기라는 뜻)라는 지명 그대로이며 뚜렷한 건기(乾期)가 없다.

사람과 언어

인종 구성은 메스티소 69%, 백인 17%, 흑인 9%, 인디오 5%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85%이며,개신교(17.31%)와 인디오 고유의 종교들도 존재한다. 언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그 외에는 영어와 대서양 해안의 크리올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문학

19세기 후반까지 적막하였던 이 나라의 문학도 불세출의 시인 루벤 다리오(후에리쿠스루벤 가르시아 사르먼트. 1867-1916)가 출현하여 일약 각광을 받았다. 소년시절부터 천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던 그는, 당시 유럽 시(詩)의 새로운 경향이었던 고답파(高踏派)나 상징주의와 잘 동화되어 크게 도약(跳躍)하여 갔다. 그의 저작 <청(靑)> <속된 속창(續唱)>을 통하여 감상적인 낭만파 시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예술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운동인 소위 '근대파' 시인의 제1인자가 되었고, 다시 더 나아가서는 한층 내면적 경향을 심화시킨 걸작 <생명과 희망의 노래>를 발표하였다. 참으로 유례가 드문 시적 감각, 그 시가 풍기는 리듬과 조화, 주제 선택의 묘(妙) 등으로 해서 현대 서정시의 최고 시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다리오는, 라틴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당시 에스파냐에서 일어난 신문학 세대(新文學世代) '1898년대(代)'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끼쳤다.

산업

니카라과는 전형적인 저개발국형으로, 주요수출품은 면화(25%), 쇠고기(7%), 커피(13%) 등이다. 면화와 커피는 플랜테이션에 의해 재배되는 일이 많다. 또한 이들 농작물은 대체로 태평양 연안과 2대 호수 사이의 지역에서 생산된다

행정구역

15개의 주 (departamento)와 2개의 자치구 (region autonomista)가 있다.

니카라과 선교비전

저희 교회는 지난 20여 년 동안 여러 선교사님들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부터 교회가 선교지 한 곳을 택하여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교우들이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약 3년에 걸쳐 그동안 지원했던 선교사님들께 저희 교회의 선교전략 수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그동안 저희 교회가 지원해 왔던 선교사님들의 이해와 양해를 구하면서 점진적으로 새로운 선교전략을 준비했습니다.

  • 저희 교회는 동남아, 구소련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멕시코,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남미의 여러 국가에 이르기 까지 여러가능 국가들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 오랫동안 기도하며 검토한 후에 저희 교회는 저희 교회가 독립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곳으로 니카라과를 후보 국가로 놓고 총 3 회에 걸쳐 12명의 성도들이 니카라과 비젼 트립을 다녀왔습니다. 그 후 기쁨으로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니카라과를 집중적으로 선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잠시 니카라과를 소개하면 이 나라는 중남미의 농업국가로서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 사이에 있는 국가로서 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2/3 정도이지만 인구는 약600만 (2012년) 정도로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입니다.
  • 니카라과는 지진, 화산 폭발, 해일 등 수많은 자연 재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정치와 경제의 악순환으로 1인당 GDP가 $ 1,913 (World Bank 2019년 기준, 한국: $ 31,762, 온두라스: $ 2,575)로 중남미에서 아이티 등의 나라를 제외하면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Daniel Ortega)부터 시작되는 지도자의 독재와 부패가 만연한 나라이지만 다행히도 행정의 일관성이 있고 군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재벌들의 부의 사회적 환원이 활발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 가정은 대가족제도가 유지되며 중남미의 어느 국가보다도 근면하고 잘 살아보려는 의욕이 많고 특별히 교육열이 높습니다. 비록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인권이 보장되고 외국인의 활동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아 한국인이 선교하기에 매우 유리합니다.
  • 더욱이 오랫동안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해왔고 불안정한 사회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남미의 어떤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선교사역이 약했던 국가입니다. 따라서 우리교회는 니카라과 선교를 위해 교회의 모든 선교 사역을 집중하되 특히 니카라과 월드비전 신학교 책임자이신 김향자 선교사님과 지역 교역자 협의회 및 여러 선교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지역 복음화를 위한 교회 개척과 지역 복음화에 집중하고, 중, 장기적으로는 신학교 사역을 통한 현지 목회자 양성 및 학원/교육사역을 통한 젊은 학생들의 복음화에 집중하여 니카라과 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니카라과 선교를 위한 1차 사역으로 저희 교회는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로부터 남서쪽으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꼰셉션 (La Concepcion) 지역에 꼰셉션 벧엘교회를 세워 2012년 6월에 헌당식을 하였습니다. 꼰셉션 벧엘교회를 통해 이 지역의 복음화, 특히 어린이들과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할 비전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꼰셉션 지역을 복음화할 것입니다.
  • 현지 목회자 양성 및 교육의 사역으로 월드비전 신학교를 도와2013년 2월 꼰셉션(La Concepcion)을 시작으로 에스텔리(Esteli), 로마 디 비엔토(Loma de Viento), 라 아만시아(La Amancia) 지역의 요청으로 캠퍼스를 시작하여 후원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와 관리 가운데 현지 목회자 및 목회 후보생들의 바른 목회 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니카라과 선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