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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따르는 자의 삶 (빌립보서 3:1-14)

  • 박덕은 목사
  • 조회 : 2510

그 분의 삶을 돌아보며.......

 

저는 지난 20098월에 CF Foundation 의 초청으로 2 주 동안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잔잔한 갈릴리 호숫가를 거닐면서 그분의 삶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당하셨던 수치와 분노를 유구한 역사 속에 침묵으로 외치는 대제사장 가야바 집의 벽에 기대어 서서 침 뱉음을 당하시며 주먹으로 손으로 매 맞으시던 주님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고함치던 2,000 년 전의 그 몽매한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기억하는 빌라도 법정의 뜰에 앉아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주님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호숫가의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1:16)?”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2 주 내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저 자신에게 물어보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주님을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러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을 따라가는 삶의 모범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 계시다면 아마도 그 분은 사도 바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바울의 삶을 통하여 함께 깨달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영적 자서전

 

사도 바울은 주후 48년 그의 첫 편지인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 자신을 사도(1:1)’ 라고 지칭했습니다. 그 후 7년이 지난 주후 55년 고린도서를 썼을 때에는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며 사도라고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고후 15:9)’ 라고 기록했으며, 또 다른 8년 뒤인 주후 63년에는 에베소서를 기록하면서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3:8)’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25년간의 목회 사역을 마치고 로마 감옥에서 죽는 날 만을 기다리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 속에 있었을 때 그는 자신의 가문, 학문적인 깊이, 복음의 열정과 헌신과 같은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나를 본 받으라 (3:4-8, 17),’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니라(딤전 1:15)” 고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평생 주님을 따랐던 바울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뜨거운 희생과 헌신을 본 받으라고 하지 않고, ‘자신의 탁월한 학문이 복음을 전달하는데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보고 배우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복음을 향한 그의 열정과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과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여 더 큰 일을 하라!’고 우리를 북돋지 않으며, 우리가 보기에 나도 저것만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교회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면서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은사, 헌신, 열정,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이런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주님을 따라 가는 일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때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자신은 무익한 종이라고 진정으로 고백 했을 때 주님께서 바울의 모든 것을 사용하시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셨던 것을 바울은 그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 생명을 드려 헌신 한다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빠지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죄악 됨을 뼈저리게 깨달아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가슴을 찢는 마음으로 고백할 때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열심도 아니요, 헌신도 아니며, 모든 은사를 다 드림도 아니라,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행하는 종이 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복음의 역사란 자신이 진정 주님의 종으로서 사용될 때 나타남도 알았기에 바울은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5).” 고 선포하였습니다.

 

종의 길은 이 땅에서 보상 받는 길이 아니요, 때론 고통과 눈물의 길인 것을 알면서도 그가 기쁨으로 종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으로 가능케 되었음도 깨달았기에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고전 15:10)”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바울의 이 고백이 진실한 고백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러한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면 저와 함께 바울의 삶의 원리를 따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바울을 존경한다면, 그리고 그와 같은 위대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바울이 걸었던 종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의에 빠져 살 것이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라는 바울의 고백이 진정 우리의 회개의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고전 15:10)” 라는 고백이 우리의 찬양과 감사로 세상 속에 선포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이기에, 우리가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데레사 수녀를 존경한다면, 바울이나 데레사 수녀가 내려놓았던 그 모든 것들을 우리 역시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 짊어졌던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 연민을 관념이 아닌 실제의 삶을 통해 실천할 수 있도록 그들이 졌던 십자가를 우리도 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에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존경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존경한다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그 분들을 닮아가기 위해 애쓰며, 때론 발버둥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저는 전 세계 인류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기는 쉬워도 우리의 옆 집 이웃을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은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 때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을 알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칼뱅 선생의 말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를 가장 많이 속이는 자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 아닙니까?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우리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주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추구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야망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종의 삶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며,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종은 악한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와 노력과 헌신 까지도 주님을 따르는 데 전혀 유익이 없을 수 있으며 도리어 때로는 해가 되는 배설물과 같은 것임을 고백하고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려놓고 포기할 때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잡는 삶, 그래서 그 은혜로 바울과 같이 우리의 가진 것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과 우리의 종 됨을 선포하는 자로서의 삶이 진정 주님을 따라가는 종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셨던 주님을 기억하며........

 

저는 이번 성지순례를 통하여 주님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셨을 언덕들을 걸으면서 저는 주님께서도 지금 나처럼 이 뜨거운 언덕길을 오르실 때 헉 헉거리시며 숨차 하셨겠지?’

 

그 언덕을 오르셨을 주님을 기억하면서 저는 왜 그리 감사했던 지요! 왜 그리 고마웠던 지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신 이 분이 애들아! 힘들다! 좀 쉬었다 가자!” 하시며 거친 숨을 고르시며 이마의 땀을 닦으셔야 했는지........ 저는 얼마나 많이 주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외쳤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주님을 따르는 삶은 다른 생각하지 않고 헉헉 거리며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발자취만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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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을 따르는 자의 삶 (빌립보서 3:1-14)
  • 2012-03-14
  • 박덕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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