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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박덕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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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 전인 지난 3월 말,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 39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나는 한 지인으로부터 진지한 질문을 받았다. 그것은 ‘자살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 분은 자신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 한다' 는 교회의 가르침 때문에 지옥 갈 것이 두려워 자살하지 못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사회에서 자살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 4월 18일 자 신문에서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현재 한국은 20개국의 OECD(경제개발 협력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 위라고 보도했다.

어디 최진실, 최진영 남매 뿐 이겠는가! 우리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남상국 전 대우사장, 연예인 이은주, 정다빈, 안제환, 장자연, 최근에는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은 세계적인 모델 김다울을 기억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작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으로도 치유되기 어려운 깊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제 자살이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요, 친구의 이야기요, 이웃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자살 공화국에 살고 있다.

그러면 교회는 자살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교회는 전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어떤 의미로든지 정당화 될 수 없으며, 명백한 살인행위로서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 는 여섯 번째 계명을 어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자살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증거하고 있지도 않다.

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은 중세 교부들의 신학 때문이다. 특히 어거스틴(Augustine)에 이어 중세 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는 그의 신학을 집대성한 ‘Summa Theologica’에서 자살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unforgivable sin)로 규정하고 자살한 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현재까지 자살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으로 받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는 혼전 관계(premarital sex)라고 할 수 있는 좁은 의미의 fornication(음행)도 구원받지 못할 죄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가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각성제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구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성경 말씀보다 구원에 있어 은혜와 동시에 인간의 선한 행위를 강조한 중세교회 교부들의 신학적 추론(theological speculation)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구원이란 회개라는 행위 이전에 인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고통이 가져오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살 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한 인간의 생명을 정죄하면 안 된다. 그것은 그들과 유가족에게 또 다른 죽음의 고통을 주는 살인행위인 것이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깊은 아픔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에게 책임이 없는지, 우리가 어떻게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함께 나눔으로 또 다른 자살의 순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주어진 삶의 소중함과 남겨진 삶에 대한 희망에 눈을 뜨게 해 줄 수는 없을까?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지옥가기 때문에 자살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고, 우리의 삶은 충분히 살 가치가 있기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것이 더 나은 인생은 없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WP)가 보도한 대로 하루에 35명씩 자살한다는 이 사회적 아픔 속에서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서로 돕고 사랑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신학적 추론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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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2012-03-14
  • 박덕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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